나는 사진 찍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모습이 어떤 프레임 안에 영원히 박제되는 것이 싫다.
마음에 들지 않는 찰나의 내 모습이 누군가의 시선 아래 두고두고 머무는 상황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여행의 기록을 정리하려고 하면서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남겨둔 기록이 없으니 머릿속의 풍경들도 그때의 기분이나 감각들도 맥락 없이 휘발되어 버렸다.
이곳에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여행이 불완전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분명 그곳에 존재했고, 나름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충분히 만끽했다.
단지 그 기억을 다시 끄집어낼 만한 구체적인 실마리가 남아있지 않을 뿐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뒤늦은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래서 이제는 어쩌다 남겨진 약간의 사진과 여전히 부족한 문장으로나마 그날의 공기와 온도를 붙잡아두려 한다.
그저 흩어지기 쉬운 기억의 파편들을 하나둘씩 주워 모으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들이다.

제목2025년 8월 속초-양양-강릉2026-03-19 00:42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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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금요일이었다.

어떤 일들은 예고 없이 시작된다. 누나와 매형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고, 그들은 집에 있던 내 아내를 데리고 무작정 속초로 떠나버렸다. 나는 남겨진 회사 업무를 모두 마치고 나서야 밤의 공기를 가르며 뒤늦게 속초로 향했다. 목적지는 속초 포장마차 거리. 이미 몇 번인가 발걸음을 했던 곳이라 그런지, 낯선 타지임에도 기분 좋은 익숙함이 발등에 감겼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안주 삼아 저녁을 먹고 술잔을 기울였다. 근처에는 망치로 못을 박는 게임을 내건 노점이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리듬으로 망치를 휘둘렀고, 우리는 그 묘한 풍경을 한참 동안 구경했다. 단순한 동작이 반복되는 소음과 밤바다의 정취가 어색하게 섞여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속초관광수산시장의 활기찬 소음 사이를 걸었다. 해장을 위해 찾은 곳은 ‘속초 문어국밥’. 사실 문어국밥 자체는 예상보다 특별할 것 없는 덤덤한 맛이었다. 오히려 곁들인 비빔국수가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주었다. 인생의 맛이란 대개 그런 식으로 엉뚱한 곳에서 찾아오곤 한다.


그날의 진짜 목적지는 주문진이었다. 오로지 홍게를 먹겠다는 단순하고 명확한 명분을 앞세워 우리는 다시 차를 몰았다. 하지만 곧장 주문진으로 가기엔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어, 중간에 슬쩍 낙산사에 들러가기로 했다. 일직선으로 뻗은 목적지 사이에 끼워 넣은 작은 쉼표 같은 것이었다. 바다를 굽어보는 절벽 위에 세워진 그곳은 확실히 풍경만큼은 압도적인 면이 있었다. 거대한 석상의 실루엣과 그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동해의 수평선. 그것은 누군가 정교하게 설계해 놓은 완벽한 프레임 안의 장면 같았다. 하지만 그 풍경을 즐기기엔 날씨가 너무도 비협조적이었다. 쏟아지는 직사광선 아래 서 있으면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수분이 증발하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근사한 광경이었으나,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육체는 명확한 피로감을 호소했다. 그 뜨거운 공기 속에서 나를 구원한 것은 석상의 미소보다 실질적인 것들이었다. 약수터에서 목을 축인 시원한 물 한 모금, 그리고 기념품 가게 문을 열었을 때 훅 끼쳐오던 쾌적한 에어컨 바람. 풍경은 때때로 육체의 물리적인 갈증과 고통 앞에서 속절없이 무력해지기도 한다. 결국 그날의 낙산사는 장엄한 바다의 기억보다, 살갗을 식혀주던 차가운 공기의 감촉으로 내 안에 더 깊게 각인되었다.


마침내 도착한 주문진 수산시장. 우리는 홍게를 그야말로 잔뜩 샀다. 문자 그대로 ‘원 없이’ 먹었다는 기분이 들 때까지, 우리는 식탁 앞에 앉아 아무런 말도 없이 게살을 발라 먹는 일에만 몰두했다. 잘 알다시피, 맛있는 게를 먹는 자리에는 대화가 끼어들 틈이 없다. 단단한 껍질을 부수고 그 안의 하얀 속살을 발라내는 데에는 의외로 정교한 집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치 각자에게 주어진 고독한 과업을 수행하듯 묵묵히 손을 움직였다. 비릿하면서도 달큰한 바다의 향이 손가락 끝에 배어들었고, 식탁 위에는 붉은 껍질들이 산처럼 쌓여갔다. 특별한 비전도, 거창한 계획도 없는 갑작스러운 여정이었지만, 그저 홍게 껍질이 높게 쌓여가는 만큼 우리의 금요일과 토요일도 나름의 묵직한 무게로 채워지고 있었다. 


어쩌면 완벽한 휴식이란, 복잡한 생각 대신 눈앞의 게살을 발라내는 일에 모든 감각을 집중하는 그런 단순한 시간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